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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術世界 Mar 2018
눈과 야심
시즌 라오 개인전
2.1~2.17
리서울갤러리
글) 야마우치 마이코(Yamauchi Maiko) 독립 큐레이터
일본이 처음 접한 서양이 대항해시대의 패권자 중 하나였던 포르투갈이라는 사실은, 일본에서 의무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모두가 알고 있을 것이다. 16세기 전반에 시작된 일본과 포르투갈 양국 교류의 흔적은 음식이나 언어 등 여러 분야에 걸쳐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그런데, 그 흔적들 대부분이 포르투갈의 극동 거점이었던 마카오를 경유하여 일본으로 들어왔다는 것은 의외로 알려지지 않았다. 그리고 마카오는 일본에서 기독교가 탄압의 대상이었던 시기 기독교인의 탄압을 피해 머물렀던 지역이었으며, 그들 중에는 마카오이 유명한 세인트 폴 대성당 건립에 관계된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신흥 국가였던 네덜란드와의 패권 경쟁에서 포르투갈이 패배한 이후 마카오는 그 발전속도가 더뎌졌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결과로 인해 100년 전의 서구문명을 보존한 채로 20세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시즌 라오는 그러한 역사를 지니고 있는 마카오에서 나고 자랐으며, 12살 때 중국으로의 주권 이양을 경험하기도 했다. 본격적으로 작가 활동을 하기 시작한 것은 마카오이공대학 멀티미디어과에 재학 중일 때였다. 중국과 포르투갈에서 조사한 결과를 통해 고향 마카오의 정체성을 추구하고 그것을 주로 사진이나 영상으로 표현했는데, 그중에서도 <백년녹두국(百年菉荳圍)>은 그의 초반기 작업에 있어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시즌 라오는 당시 급속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던 재개발로 인해 전통적인 건축물들이 철거 대상이 된 것에 주목하고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활을 주제로 작어업을 시작했는데, 결국 그 동네를 보존하는 성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의도치 않은 결과는 작가로 하여금 작업을 지속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현재 그는 홋카이도를 거점으로 작업하고 있는데, 홋카아도의 설경과 탄갱의 폐허에 매료된 그는 2009년 이 땅으로 이적할 것을 결심했다고 한다.

겨울이라는 계절이 상징이 되어버린 홋카이도 지역에서의 생활, 그리고 2011년에 일본대지진을 경험한 것은 그의 작품 콘셉트를 더욱 다층적이면서도 견고하게 변화시켰다. 즉, <백년녹두국>에서 보인 인간이나 지역사회에 대한 관심에 더해 자연관이 작품에 반영돤 것이다. 식물 본연이 지닌 섬유의 질감과 촉감이 두드러지는 수제 한지를 사용하게 된 것도 이러한 연장선상에서 일어난 변화이다. 한편, 그 화면 속으로 눈을 돌리면 그곳에는 동아시아의 전통적인 회화적 표현과도 그 공통점을 찾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중국 회화의 백과사전이라 알려진 청나라 시대의 「개자원화전(芥子園画伝)」에 소개된 회화법이 있는데, 송나라 시대의 곽희가 저술한 「임전고치(林泉高致)」에서 인용한 선을 긋는 법이나 점을 찍는 법 등을 소개하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먹이 아니라 지지체의 색을 주체로 하는 방법 2가지를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하나는 견본의 바탕색을 살리면서 먹을 연하게 사용하여 안개 낀 풍경을 살리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먹을 칠하지 않음으로 폭포와 같은 모티브를 나타내는 방법이다. 시즌 라오의 사진은 대부분이 설경이며, 그가 눈을 표현하는 방법이 바로 지지체의 노출에 의한 표현방법이다. 「개자원화전」에서 지지체의 색을 살리는 안개와 폭포의 표현은 그 대상은 다르지만 물에서 나온 것이라는 공통점에서 보자면 눈 역시 통하는 것이다.

그런데 시즌 라오의 작품에서 눈과 함께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이 있는데, 바로 폐허가 된 탄광이다. 근대화의 동력이었으나 시대로부터 버려진 탄광에 작가가 흥미를 가진 것은 그가 아름다운 폐허를 상징으로 하는 도시 마카오에서 태어나 주권 이양을 계기로 일어난 재개발에 의한 철거 위기를 경험하는 등 문화의 흥망을 가까이서 지켜본 것과 연관이 있을 것이다. 차세대 에너지원을 떠맡은 것처럼 보이는 원자력 발전소의 대재앙을 경험한 것 역시 작가에게는 작업을 이어가야 하는 충분한 이유가 된다.

시즌 라오는 자신의 작품 제작의 “70%는 철학과 기법, 나머지 30%는 목적”이라고 말한다. 그 철학이란 바로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모색하는 것이며, 목적은 사람들에게 ‘지속성'에 대해 생각하길 바라는 것이다. 그의 작품은 마초적이고 땀내 나는 이미지를 가진 탄광을 소재로 하면서도 너무나도 정밀하고 서정적인 분위가를 자아낸다. 여기서 다시금 작가의 의중을 의식하며 작품을 본다면, 거기에는 사회를 움직이는 힘과 지식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이 작품을 감상함으로써 오늘날 우리 사회의 문제가 무엇인지 관심을 갖게 하는 모종의 전략이 드러난다. 동시에 필자는 그 야심이 마음에 든다. 그리고 그는 “마카오의 현대미술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만들고 싶다”고도 말한다. 목적에 대한 강한 의지와 넓은 시야. 어쩌면 그의 신체에는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해 바다를 건너 온 대항해시대 사람의 피가 어딘가에 흐르고 있는지도 모른다.